Saturday, November 28, 2009

1985년, 마빈 해글러 vs 토마스 헌즈

1985년, TV앞에서 이 경기를 라이브로 봤던 기억이 난다.


당시 해글러는 핵주먹으로 이름을 날리던 미들급 최강의 챔피언이었지만, 잘 생긴 얼굴 덕인지 점잖은 이미지로 내 기억에 남아있다. 하지만 헌즈는 말 그대로 악동, 꿈에 볼까 무서운 팔 길고 험상궂은 모습의 복서로, "히트맨"이라는 별칭이 붙어 있었다. 실제 헌즈는 많은 복싱 만화에서 그 이미지가 차용되어 사용되기도 하는 등 개성 강한 인기 캐릭터, 요즘 표현을 빌리면 나쁜 남자 이미지를 확실히 굳히고 있었다.


이 경기 전에 본 경기로, 로베르토 두란과 토마스 헌즈의 경기가 기억이 난다. 두란도 강타자로 이름을 날리던 선수고, 천재 복서 슈거레이 레너드와 박빙의 승부를 펼쳤던 적이 있다. 이 때문에 당시 승부는 반반을 점치는 사람이 많았는데...


실제 경기는 토마스 헌즈의 압승으로 끝난다. 압승 정도가 아니라, 충격적인 승리. 거의 샌드백 처럼 두들겨 맞다가 실신 KO를 당하는 두란은 이후 뭔가 문제가 있었던 게 아닌가 하는 의심마저 들게 한다. (음주권투?ㅎㅎ) 하지만 당시 헌즈의 강한 이미지는 이 경기로 인해 상상을 초월하게 된다.


자 그럼 "마블러스" 마빈 해글러와 "히트맨" 토머스 헌즈의 경기 동영상을 보자.



1라운드 초반 헌즈의 라이트 어퍼에 안면을 빗겨 맞은 해글러는 눈 근처 부상을 입고, 피를 계속 흘리게 된다. 그러나 경기는 해글러가 주도하는 양상. 특히 근접전에서의 짧은 펀치 구사는 눈부실 정도이다. 뭐 내가 전문가가 아니니 직접 보고 느끼기 바란다. 2라운드에서는 확실히 해글러가 우세. 2라운드가 끝나고 걸어 들어가는 헌즈의 표정은 20년이 지난 지금에도 기억 속에 똑똑히 남아있다. 힘들겠다는 표정... 질린다는 표정... 포기하고 싶다는 표정... 운명의 3라운드. 해글러는 절대 우세를 잡아나가는데, 거친 경기 때문에 계속 피가 흐르고, 주심이 링 닥터를 호출한다. 아마도 이 경기를 보던 모든 사람들이 "안돼! 이렇게 끝낼 수는 없어!" 하고 생각했을 것이다.


이런 마음이 통했을까? 헌즈는 이미 다리가 풀려가는데, 해글러의 먼 거리에서 날린 라이트 훅이 적중되고, 헌즈는 등을 보이고 만다. 해글러는 재빨리 쫓아가는데, 이 때의 모습을 슬로우로 보면, 그야말로 낭비가 전혀 없다. 라이트 한방, 레프트 훅이 빗나가자마자 오른발로 디딘 후, 몸을 날리는 라이트 펀치. 헌즈의 안면에 적중하면서, 헌즈는 정신을 잃는다. 그걸로 게임은 끝.


누가 이겼든, 이런 멋진 경기는 가끔 꺼내보고 싶은 법인 것 같다.

No comments:

Post a Comment